약력과 중력 그리고 은혜 | 운영자 | 2024-0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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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 큰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갈 수가 있지?” “새는 하늘을 날아갈 수 있지만, 저 크고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 높이 떠서 멀리 날아갈 수가 있을까?” 어렸을 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서 늘 궁금했고, 호기심도 컸었습니다. 미국 라이트형제가 최초로 비행실험을 했던 킬데빌언덕 위에서 나는데 성공했고, 3년 후 처음으로 동력비행기도 제작하여 그 비행기 이름을 “플라이어호”라고 지어서 인류 최초로 비행하는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108번이나 실패 끝에 얻은 첫 비행성공이었습니다. 400톤이 넘는 거대한 비행기가 떠서 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양력” 때문입니다. 두 날개가 공기의 흐름 방향을 바꾸어서 무거운 중력보다 떠오르게 하는 ‘양력’을 더 크게 함으로서 비행기가 이륙하여 날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 “양력의 법칙”을 비행기가 떠서 날아가는 날개에 비교해서 ‘새로운 속성’을 잘 설명해줍니다. 우리 안에 ‘새로운 속성’이 일하도록 하면 ‘양력의 법칙’이 작동하여 비행기처럼 우리도 날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밑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의 법칙’과 같은 내 ‘옛 속성’이 더 강해지면 아무리 힘을 써도 계속 마음이 다운이 되고 가라앉아서 뜰 수조차도 없게 됩니다. 필립 얀시가 지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기적’은 물리적인 법칙을 뛰어 넘지만, ‘은혜’는 모든 윤리, 도덕적 법칙을 뛰어 넘는다고 다음과 같이 ‘은혜’를 말해줍니다. “불교의 고행, 힌두교의 업보, 유대교의 언약, 이슬람교의 법전은 모두 노력으로 인정받는 길을 제시하는 반면, 감히 하나님의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받는 것은 기독교뿐이라고 말이다.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소외된 자, 연약한 자, 억눌린 자, 가난한 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은혜다. 그들의 노력이 아닌 것이다. 필립 얀시는 탕자의 비유에서 사랑에 애타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그 사랑의 은혜는 값없는 용서와도 같다고 한다. 용서는 주판알을 튕기는 어떤 계산이 필요한 산수가 결코 될 수 없으며, 오직 불가항력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힘에 짐짓 무너져 내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일 뿐인 것이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약화시킬 수 없을 만큼, 그 은혜의 힘은 실로 막강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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